전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

2024년 현재, 전 세계 주요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하게 반도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일본, EU 등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사활을 걸고 자국의 반도체 기술과 산업 육성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반도체 제품에 대한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으며, 인텔, AMD, 삼성, TSMC 등 반도체 제조 기업들 또한 제조 경쟁력과 제품 생산성,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경쟁이 이렇게 가속화된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발생한 반도체 대란은 현대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위상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반도체 공급 마비 사태로 반도체를 제때 공급받지 못한 자동차와 조선 등 제조업에서 생산라인을 멈출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반도체가 경제적 무기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 더해 ChatGPT 등 인공지능의 발달은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인 확대의 도화선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학습과 연산을 전제로 하는데, 반도체가 없다면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성능 GPU의 경우 1개당 5만 달러라는 고가임에도, 전 세계적인 물량확보 경쟁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그 결과 인공지능과 미래 산업을 위해서 반도체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필수요소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이후 새로운 성능을 갖춘 반도체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반도체 시장에서의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제는 반도체를 잡는 국가와 기업이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반도체란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는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인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인 부도체의 중간 정도의 성질을 가진 물질이다. 기술적으로 본다면 반도체는 순수한 상태에서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와 비슷한 특성을 보이다가, 빛과 열을 가하거나 특정 물질을 첨가하면 도체처럼 전기가 흐르는 물질이 된다. 이렇게 전기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면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0과 1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연산이나 정보저장 등에 활용할 수 있다. 1947년 미국 벨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박사가 반도체에 전기를 작용시켜 전기 흐름을 조절하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여 반도체의 원조가 됐다. ‘반도체’란 용어는 우리가 물질을 분류하는 하나의 물리적 성질을 말한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 반도체 기술 등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반도체’는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s) 기술을 뜻한다. 집적회로는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 패캐시터, 저항 등을 소형화하고 고집적시켜 전기적으로 동작하도록 한 것이다. 이 회로를 정해진 공간에 얼마나 잘 구현하여 원하는 성능을 작동시키느냐 하는 것이 반도체 기술의 핵심인 셈이다.

반도체의 기능

반도체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전기신호를 처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다. 우선 전기신호의 처리방법은 정류, 증폭, 변환 세 가지가 있다. 정류는 한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게 만드는 것이고, 증폭은 전기신호의 세기를 높여 주는 과정이며, 변환은 전기신호를 빛 또는 소리 등 다른 신호로 바꿔주는 기능이다. 다음으로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 기능은 전환, 저장·기억, 연산, 제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환은 정보값을 디지털 등으로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한다. 저장은 데이터를 첩 속에 기억시키는 것이고, 연산은 수치 정보를 계산하는 것이며, 제어는 기계나 설비가 정해진 순서에 따라 동작하도록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정보 저장을 주목적으로 하는 반도체를 메모리 반도체라고 하고, 연산이나 제어 등을 목적으로 하는 반도체를 비메모리 반도체 혹은 시스템 반도체라고도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RAM, Flash Memory 등이 메모리 반도체이고, CPU, CIS, AP 등은 비메모리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로 범용 양산 제품으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구동된다. 삼성이나 하이닉스 등이 대표적인 제조 회사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응용 분야별로 특화되어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 시장에 나온다. 통신, 자동차, 제어 등 다양한 분야에 공급되는 전자제품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전체 반도체 시장으로 본다면 비메모리 반도체가 메모리 반도체의 세 배 정도의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고, 미국 이외에 일본, 대만, 중국, 유럽 등이 주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변화와 차세대 반도체의 등장

1990년대 이후 반도체는 다양한 변화를 겪었지만, 고집적 고사양 반도체 생산이라는 일관된 변화 방향이 있었다. 사실 그간 반도체 시장은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가 1~3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무어의 법칙’이 지배했다. 메모리 칩을 예로 들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메가바이트 급이었던 칩이 현재는 기가바이트 급으로 진화해, 같은 공간에 1,000배의 용량을 더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반도체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보다 빠르고, 전력소모가 적은 맞춤형 반도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병렬연산 등 데이터 동시처리를 위한 연산속도, 연산 시 사용되는 전력효율, 특수목적 반도체 등이 주목받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인공지능의 발달이고, 두 번째는 무선 IoT 기술의 발달이며, 세 번째는 에너지 공급의 문제다.
우선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반도체의 요구 사항이 바뀌고 있다. 기존에는 1개의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한 번에 대규모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서는 한 번에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직렬연산용 CPU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동시에 연산이 가능한 GPU와 같은 반도체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무선 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IoT 기기가 나오면서 기기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반도체의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따라 다양한 일상생활은 물론 다양한 산업군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에 맞는 제어와 연산, 데이터 처리를 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요해진 것이다. 하나의 칩에 CPU와 RAM 등이 모두 포함된 SoC(System on a Chip)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가 많이 쓰이게 되면서 반도체가 쓰는 전력에 대한 문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는 작동하면서 전력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 소모량이 적지 않다. 인공지능 가상자산 기술의 확산에 따라 데이터 센터 등에서 활용하는 전력 때문에 전세계 전력 소비량이 2022년에 대비해 2026년에는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더욱이 무선기기의 경우 반도체의 소비전력이 기기의 사용시간과도 밀접하므로 저전력 반도체에 대한 요구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반도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바로 HBM(High Bandwidth Memory), CXL(Compute Express Link), PIM(Processing-in-Memory)와 같은 반도체다. HBM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 메모리를 쌓아 올려 대역폭을 향상시킨 고밀도 메모리다. 대역폭과 속도가 뛰어나 머신러닝과 같은 AI학습용 반도체로 개발 중이다. 또 CXL은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제품에 활용하기 위해 프로세서, 메모리, 가속기, 스토리지를 연결한 칩이다. 칩 하나로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반도체다. PIM은 메모리 내부에 CPU와 메모리를 동시에 넣은 반도체로, 메모리 속에 프로세서가 들어있어 시스템 성능과 에너지 효율이 높다.

반도체 경쟁 우위를 위해서는

한편, 반도체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경쟁력을 갖춘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지배적인 우위를 보이는 곳들은 많지 않다. 이는 반도체가 설계하기도, 제작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할 인력도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노하우까지 결집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반도체의 사용 목적에 따라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공정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시스템 전반에 대한 노하우가 동반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설계 기술력이 있더라도 자본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까지 있다. 반도체 설계와 검증에 사용되는 프로그램만 해도 1copy 당 수억 원에 이르며, 시제품 생산에도 만만찮은 비용이 소요된다. 반도체 설계 비용의 절반은 시제품 생산에 투여되는 비용이라고 할 정도다.
반도체 생산은 설계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 반도체는 고순도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초미세 공정이 다수 있어서 시설과 장비에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된다. 반도체 노광장비의 경우 1대에 수천억 원을 호가한다. 여기에 불량률을 줄이고 수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공장 1동에 수조 원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운영을 위해서도 엄청난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반도체 생산 경쟁력의 핵심인 수율 제고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공정제어 및 소재 개발 등도 병행되어야 한다.
반도체 인력 문제도 전 세계 관련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반도체 생산 설비 증설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인력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인력은 필수요소다.
그러나 반도체의 인력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반도체 인력 교육을 위해서는 실무에 강한 교수진과 함께 실험·실습이 필수적인데 여건을 갖춘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서 나오는 인력 문제의 해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 대부분은 반도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생태계의 조성이다. 특히 산·학·연 연계가 중요하다. 현장과 연구의 결합을 통해 계속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현장 기술 수요에 맞는 고급 인력을 지속 양성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시장 요구에 맞는 신제품 개발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 못지않게 인력 확보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차세대 반도체 경쟁을 위한
혁신 시스템

하나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반도체공학과 신설

GIST는 반도체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해 삼성전자와 손잡고, 2024년 채용연계형 반도체 공학과를 신설하여 운영 중이다. 2024년부터 매년 30명씩 선발되는 GIST 반도체공학과는 박막·노광·식각·산화·후속 공정 및 물리·화학적 분석 등이 가능한 총 44대 장비를 갖춘 화합물반도체 광융합 나노공정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현재 칩렛 이종 집적 및 팬아웃 패키징 등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을 위한 첨단 공정 팹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 첨단공정 설비
차세대 AI반도체
첨단공정 팹 건립

‘AI반도체 특화단지 조성사업’의 하나로 건립 중인 차세대 AI반도체 첨단공정 팹(반도체 제조공장)이 오는 2027년 GIST 교내에 문을 열게 된다. 반도체 팹이 건설되면, 광주 첨단 3지구에 조성되는 AI 산업융합 집적단지와 연계된 AI반도체 산업 인프라가 조성되며, AI반도체 학습은 물론, 생산 및 협력 사업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특화 반도체 연구
뉴로모픽(Newmorphic)
반도체 연구 사업

GIST에서는 지역혁신 메가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슈퍼비전 AI를 위한 겹눈 모방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신경망과 같이 인지·추론 등 고차원적인 기능을 재현하는 것이다. GIST의 송영민 교수팀이 곤충의 겹눈 원리를 모방해 이미지 인식을 극대화한 슈퍼비전 AI용 반도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