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를 넘어서
탄소 순환 경제 시대로…

박영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2023년 여름의 기록적 폭우는 드디어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다음 예상되는 폭염이 또 얼마나 역대급일지 다시 걱정이 앞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기후 환경을 설명할 때 기록적, 역대급과 같은 비일상적인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과 같은 모순을 느낄 때가 많다. 폭염, 폭우, 가뭄, 홍수, 산불 등 기후 환경의 문제는 비단 우리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어느 지역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현재의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은 더 이상 빙하 소멸로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갈 위기에 처한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느낀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재의 기후 변화에 따른 생존 위협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로 인해 발생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본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온실효과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생명체가 살기에 온화한 온도로 유지시켜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본격적으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함에 따라 무분별하게 과잉 배출된 이산화탄소CO2 등의 온실가스로부터 현재의 기후 위기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화석연료는 주로 탄소(C)와 수소(H) 원자를 포함한 유기화합물인 탄화수소이다. 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연소를 통해 열에너지를 얻어내고, 이후 에너지 전환 과정을 통해 전기에너지 등 보다 편리한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석연료의 연소 과정을 조금 더 화학적으로 보면, 화석연료의 탄소와 수소 원자를 공기 중 산소와 결합시켜 ‘안정한’ 형태의 이산화탄소와 물H2O을 만들어내는 과정일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화학반응의 결과물인 이산화탄소가 열역학적으로는 상당히 안정적인 화합물로서 한번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다른 화학물질(즉, 온실효과를 덜 일으키거나, 일으키지 않는 물질 또는 다른 유용한 물질)로 전환하는 과정이 쉽지 않으며, 여기에는 응당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에너지가 재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기후 위기는 화석연료가 마치 매우 값싼 에너지인 양 착각에 빠져 그동안 무분별하게 사용해 왔던 인류가 이제는 매우 값비싼 환경 청구서를 받고 당황해 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화석연료의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이 기후 변화의 주범이라는 점을 전제로 할 때 (물론,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플루오린화황SF6 등 비이산화탄소non-CO2 온실가스의 영향도 상당하다.) 미래의 에너지 패러다임이 과연 화석연료 의존도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늦어도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의 순 배출량을 ‘0’으로 하는 이른바 ‘넷-제로 (Net-Zero)’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른 액션 플랜(Action Plan)의 주요 골자는 현재의 화석연료 일변도의 에너지 의존성에서 탈피하여, 태양광(열), 풍력, 지열 등 이른바 지속가능 재생에너지 기반 사회로의 조속한 전환이다. 이들 재생에너지로부터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수소(H2), 암모니아(NH3) 등의 형태로 잉여 에너지를 저장하는 이른바 탈탄소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앞다퉈 표방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기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보급과 확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너무 극단적이겠지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만일, 내일부터라도 당장 모든 인류가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고 이 모두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고민은 말끔히 해결될까?’ 당연한 결론일 수 있겠지만, 필자의 답 역시 회의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이미 확보했다고 전제하더라도, 우선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각종 자원의 공급에 대한 문제가 따른다. 실제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전기자동차에 소요되는 희토류 및 각종 금속을 포함한 광물 자원은 약 10배 이상 더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위해 요구되는 전략 광물의 요구량은 현재 대비 최소 6배 이상 이라고 한다. 현재 대부분의 자연 광물 채취 과정이 전통적인 채굴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무리한 개발은 기후 위기와는 또 다른 형태의 자연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 역시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생에너지 보급 및 확대에 필요한 광물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해결될까? 현재의 기후 변화를 이야기할 때 매우 상징적인 숫자가 있다. 바로 400ppm(part per million)이다.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전까지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평균적으로 280ppm가량이었으며, 이러한 농도가 약 6,000년가량 유지되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농도가 증가하여, 현재는 400ppm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 증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해 왔던 것인데, 문제는 지금부터 당장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한다고 해서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과거 배출해 왔던 온실가스가 대기로부터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배출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는 바로 지금 당장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두 가정을 모두 충족했다고 다시 한 번 가정하자. 기후 변화에 대한 고민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할 때, 그럼 우리 인류는 최소한 현재와 같은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을까?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그리고 ‘탄소’로 이뤄진 것들을 하나씩 사라지게 하는 상상을 해 보자. 아마도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포함해 주변의 각종 물건 대부분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철 구조물들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화석연료는 단순히 태워서 열을 내는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만 감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탄소라는 중요 자원의 원천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다. 석기 시대의 종말은 더 이상 돌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이야기처럼, 우리가 희망하는 ‘탈탄소’ 시대 역시 화석연료로부터의 독립일 뿐, 탄소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보고된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리포트 등에서는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의 역할 못지않게 BECCS(Bioenergy with Carbon Capture and Storage)와 DACS(Direct Air Capture and Storage)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BECCS 기술은 화석연료를 대신하여 또 다른 형태인 탄화수소 바이오매스로부터 에너지 또는 탄소 자원을 추출하고, 불가결하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 및 저장하는 기술이며, DACS는 공기중 400ppm 저농도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저장하거나 유용한 물질 형태로 전환하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기존의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이 화석연료의 사용으로부터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 전환, 또는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선형적(Linear)이었다면, BECCS 및 DACS 기술은 모두 이산화탄소를 지속 가능한 탄소 순환계(Circular Carbon Cycle)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일, 우리 인류가 지금의 기후 위기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한 채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분명한 것은 화석연료를 다시 사용하겠지만, 그 방식은 우리가 200여 년 간 해 왔던 방식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와 미래의 지구, 그 위의 모든 생명체와 인간의 지속 가능함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인식의 전환은 ‘탄소를 어떻게 줄일까?’가 아닌, ‘탄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