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 음악을 작곡하는 인공지능 등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인공지능이 제작한 작품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부터 예술의 위기론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2018년 10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그림 한 점이 43만 2,500달러(한화 약 5억 원)에 낙찰됐다. ‘벨라미가(家)의 에드몽 벨라미’라는 그림이었다. 흐릿한 색으로 신비로운 귀족 분위기를 풍기는 신사를 그린 이 그림은 언뜻 보면 17세기 초상화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가만히 작품 구석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작가의 서명에 숫자와 기호로 이뤄진 공식과 같은 것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작품은 14세기에서 20세기에 완성된 1만 5,000여 점을 학습한 인공지능 GAN 알고리즘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비록 이벤트 경매라는 점과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에 대한 최초의 경매라는 프리미엄이 붙긴 했지만 일반 작가들의 작품 가격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가격으로 미술 작품이 판매된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에 대해 예술계는 기대와 반대의 두 입장으로 나누어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옹호하는 쪽은 인공지능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예술 창작의 방법과 환경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인공지능을 프로그램 도구로 사용하면서 예술계가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대하는 쪽은 예술이란 인간 고유의 능력인 창의적 예술활동을 모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수십 년 간 예술에만 몰두해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작물을 단 몇 분에 걸쳐 뚝딱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은 단순한 모사에 불과하다고 힐난했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들을 예술로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고유 권능인 창조성이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사진이 나왔을 때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예술가들은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술에 관한 정의와 관점이 변해 왔듯이 인공지능이 창작한 작품도 본격적인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창작자의 의도만 있다면 인공지능은 얼마든지 협업이 가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AI를 통해 제작한 그림 <Theatre D'opera Spatial>
이후 인공지능을 활용한 그림들은 예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도 있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열린 미술대회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그림이 우승을 차지했다. 미드저니라는 AI 프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이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가장 윗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미술대회의 규정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거나 디지털 방식으로 이미지를 편집하는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미술대회 주최 측은 “창작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그 어떤 예술 행위도 용인한다”라고 말했다. 미술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의 출간 10주년 기념 서문을 인공지능 ’GPT-3’가 썼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예술이라는 단어는 기술과 공통점이 많다. 예술의 의미하는 ‘art’라는 단어는 라틴어 ‘ars(아르스)’에서 나왔다. 그런데 ‘ars’는 그리스어 ‘techne(테크네)’에서 유래했다. 우리가 기술이라고 부르는 ‘technique(테크닉)’도 바로 이 ‘techne’가 어원이다. 예술과 기술은 본래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그의 책 『‘The Story of Art(서양미술사)』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이란 것은 없다. 오로지 예술가들만이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곱씹어 봐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