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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3명(15개 팀)의 참가로 출발해 지난 2021년에는 96명(25개 팀)이 함께한 ○○○○ 프로젝트는 ‘실패해도 좋아,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라는 취지로 시작된
지스트 대학생들의 공식적인 “딴짓” 활동입니다.
소정의 활동비는 물론 창의함양 교과목 학점, 학교 내 활동 공간,
전문가 멘토링 및 컨설팅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응모기간
2022년 5월 26일까지
응모방법
정답과 핸드폰 번호를 lmj@gist.ac.kr로 보내주세요.
추첨을 통해 20명에게 1만원 상당의 모바일 기프티콘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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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 온 26년,
문승현 교수님이 남겨주신 것들

지난 2월, 1994년부터 28년간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스트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문승현 교수(지스트 前총장)의 정년퇴임식이 진행되었다.
오랜 기간 그의 옆에서 각별한 추억을 쌓아 온 김경웅 교수가 지스트를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문승현 교수님의 퇴임을 맞아 교수님과 함께한
26년간의 추억을 회상해본다.

1996년 가을, 문승현 교수님을 만나다

문승현 교수님과의 첫 만남은 아마도 1996년 가을쯤. 1994년도부터 대전의 사립대학에서 근무하던 내가 광주과학기술원(그때는 K-JIST)의 교수 채용 공고에 지원하여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세미나 및 면접을 위해 처음으로 광주과학기술원을 방문했을 때일 것이다. 당시 환경공학과 학과장이셨던 문승현 교수님은 사전에 내게 전화를 걸어 면접 일정을 알려주시고 방문 호스트 역할을 맡아 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광주를 거의 와 본 적이 없었던데다, 새마을호 기차 시간표를 보니 도착시간이 애매해서 문교수님에게 방문 시간을 30분 정도 늦춰도 괜찮을지 문의 전화를 했다. 그러고는 다시 원래 제안하신 일정대로 방문하겠다고 번복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 채용 심사에서 이런 전화를 한 내 철없음이 창피하기까지 하다. 참으로 개념이 없는 지원자로 보였을 텐데도 문교수님은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셨다.

당시는 LG도서관이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환경공학과 건물 1층에 임시도서관이 있던 때였다.
사무실에서의 짧은 면담 후, 문교수님은 면접 세미나를 위해 2층의 강의실로 나를 안내해 주셨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발표 자료를 보여 줄 때는 무려 오버헤드프로젝터(OHP)를 이용했을 만큼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발표 후 문교수님이 하신 질문들이다. 그때 나는 박사학위 기간 중의 연구 이외에도 당시 수행 중이었던 프로젝트의 비저항탐사를 이용하여 오염물질 유동 여부를 알 수 있다’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발표했다. 문교수님은 내가 부임하기 이전에 퇴직하신 유지수 전임 교수님이 구매해 놓으신 장비의 활용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인지 이런 질문을 하셨다.
“그럼 그런 물리 탐사 방법으로 오염물질의 종류까지도 판별이 가능한가요?”
아마도 문교수님은 그때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교수 채용 세미나의 당사자였던 나는 문교수님이 던지신 질문 하나하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등불을 밝혀 준 고마운 선배님

임용된 이후에도 문승현 교수님은 학과장으로서, 또 선배 교수로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문교수님 연구실의 석사 졸업생을 내 연구실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고(이렇게 해서 경상대학교의 김순오 교수가 내 연구실의 첫 박사 졸업생이 된 것이다), 후에는 문교수님이 책임을 맡으신 원자력 관련 연구사업 ‘원자로 일차 냉각 계통 오염의 최소화 방안 연구’에도 나를 참여시켜 주셨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 중의 하나는 나의 연구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을 주신 일이다. 이전까지 내 연구는 주로 중금속 오염 지역의 조사 및 위해성 평가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발견된 오염을 처리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문교수님의 제안으로 전기동력학을 이용한 오염 토양 처리 프로젝트 등을 같이 진행하게 되면서 오염 토양 정화 분야로까지 연구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 내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가 되었다. 문교수님은 내 손에 물고기를 쥐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고기를 잡는 법까지도 알려주신 것이다.

내가 1997년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 이후 2004년도에 학과장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대부분 문교수님의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 부임 초기에 문교수님이 학과장으로서 능숙하게 교수회의를 진행하시고 다양한 행정업무를 처리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맘속으로 ‘참 잘하신다. 저런 능력은 타고난 걸까? 난 아무래도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막상 내가 학과장을 맡아야 할 때가 왔을 때는 문교수님이 이전에 하셨던 것을 떠올리고,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흉내를 내가면서 했었던 것 같다.
문교수님은 교수 생활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를 알려주신 고마운 선배 교수님이다. 조만간 집필할 계획인 ’내 인생을 바꾸어 준 고마운 분들‘이라는 글에 꼭 담길 분으로, 내 마음속에 마련해 둔 감사 인사 자리에는 이미 오래전에 초대되어 앉아 계신다.

실은 유머도 많고, 다정하신 분입니다

문승현 교수님이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인지 내가 아는 많은 사람(특히 과거의 학생들)은 문교수님을 조금 무서워한다. 무엇보다도 학과 초창기 학생들은 문교수님을 두려워했고, ‘무서운 학과 교수님’ 순위에서 늘 1등을 차지하셨다. 아마도 세미나 등 연구에 관한 토론을 할 때면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시고 학생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셔서인 것 같다.
그러나 후배 교수로서 본 문교수님은 해박한 지식 외에도 유머가 있는 분이다. 적어도 내가 하는 유머 혹은 가끔 던지는 도전적인 조크도 늘 웃으며 잘 받아 주셨다. 언젠가 학교의 한 직원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문교수님의 주변 사람 대부분(후배 교수 포함)이 감히 문교수님께 농담을 하지 못하는데 나만 자유롭게 하는 것 같다고. 비결이 뭐냐고.
글쎄, 나도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위 말해 문교수님과 나의 케미가 잘 맞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문교수님은 출장을 많이 다니지 않는 스타일이시다. 학교 내의 주요 보직을 맡아 워낙 바쁘시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출장은 가지 않는 원칙주의자이신 것 같다.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1998년 무더운 여름날, 학과의 낡은 봉고차를 몰고 2차선 왕복의 88고속도로를 운전해서 편도 7시간 거리의 안동지역 축산 폐수처리 시설을 같이 다녀온 출장길은 유독 기억 속에 남아있다.
국내 출장과 마찬가지로 문교수님은 국외 출장을 나가시는 일도 드물었기에 국외 출장 동행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게도 문교수님과 여러 차례 국외 출장을 함께 했다.
특히 광주과학기술원을 UNU(United Nations University)의 협력 기관으로 만들고자 했을 때는 동경 시부야에 있는 본부를 여러 차례 방문해야 했는데, 당시 나는 부소장으로서 소장인 문교수님을 보필하며 자문위원회에 자주 참석했다. 2008년도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자문위원으로 모시고 갔던 일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또 베트남 하노이 과학대학교와 공동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면서 베트남으로 특강을 다녀온 적도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17년도에는 당시 총장님이셨던 문승현 교수님을 모시고 제1회 GIST 베트남 총동문회를 하노이에서 개최했고, 해당 행사를 통해 학교 발전기금을 모을 수 있어서 뜻깊은 추억이 되었다.

이러한 국외 출장 중 내가 발견한 문교수님의 의외의 면은 무던함이었다.
한 가지 일화로 공항검색대에서 여행용 트렁크 안에 들어있는 물건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문교수님은 사모님이 짐을 챙겨주셔서 내용물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대답하셨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신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문교수님의 행정 일을 도와주던 P 직원이 직무 경험이 많지 않아 출장 일정을 새벽부터 아주 빡빡하게 잡아놨는데도 아무 불평 없이 모든 일을 마치고 귀국하신 일도 있었다.
내가 아는 문교수님은 학문에 대해서는 열정과 단호함을 고수하시지만, 같이 일하는 부하직원들에게는 한없는 따뜻함을 보여 주신다. 국제환경연구소의 직원이나 연구원이 이직을 위해 떠날 때면 꼭 책을 선물로 주셨고, 직원들이 요청한 결혼식의 주례도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지 달려가셨다.

문승현 교수님,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저는 많은 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그 수많은 분 가운데서
제게 최고의 선물을 주신 분이십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이 만들어주신 추억과 나눠주신 다정함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