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포켓몬 GO 휴대폰 게임이 한국에 상륙했다.
속초에 포켓몬이 출몰한다는 정보와 함께 이 지역에는
스마트 폰을 대신 들고 다니며 게임을 대행해주는 직업까지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오타쿠’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와 일상이 된 순간, 이미 GIST에서는 장진호 교수와 학생들이
2015년부터 이런 오타쿠 문화를 공부하고 있었다.
‘오타쿠’ 수업이라니, 놀랍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합니다.
<오타쿠 대중문화론>은 2015년 봄학기에 지스트에서 처음 개설된 일반선택 과목입니다. 현재는 매년 봄가을 학기 중
에 1회 개설되며 3학점 시수의 과목으로 매주 2회에 걸쳐서 강의와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관련되어 학제
적 분야(interdisciplinary field)로서 ‘문화연구’ 혹은 ‘문화학’(cultural studies)이 국내 몇 대학에 학과로서 혹은 여러
학과 간 협력 프로그램으로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그 분야 개론이나 관련 교양 과목들이 언론정보학과 등에 개설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문화연구 개론 과목이나 대중문화론 관련 교양 과목은 내용상 좀 밋밋한 데다가, 관
련 학과의 전공과목들과 연결되어 더 확장된 심화과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저 개념과 이론의 맛보기에 그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공이 아닌 일반선택 과목으로 수업을 이수하는 경우 학생들에게 보다 익숙해져 있는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등과 연관된 문화현상들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과목명에 ‘오타쿠’라는 단어를 집어넣는 것이 이러
한 초점을 분명히 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오타쿠’현상이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세계적으
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도 착안했죠.
재미와 흥미를 넘어 연구 대상이 된 오타쿠 문화군요.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마블 시리즈인 <어벤저스>와 맞먹을 만큼 매니아들이 열광한 작품이 이미 1990년대 중
반에 있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입니다. 이 작품을 제작한 회사 ‘가이낙스’의 창립자인 오카
타 토시오는 제작자 겸 평론가로 1990년대 중반 자신의 도쿄대 강의를 기반으로 <오타쿠학입문>이라는 저서를 발
간합니다.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현재 수업 교재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다 학술적
인 차원에서는 국내에도 여러 권 번역된 평론가 오츠카 에이지,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알려진 아즈마 히로키의 오타
쿠 문화에 관한 논의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예일대 출판부에서도 2012년 (제한 없는 팬덤: 연결된 세계 속의 오타쿠 문화)라는 편저가 출간되었고, 미국의 MIT에서는 하버
드대와 함께 오타쿠 연구와 관련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몇 해 전 진행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현상이 학문적으로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오타쿠학’(otakuology)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오타쿠문화’라는 일종의 서브컬
처가 주류 학술장에서 관심을 받게 된 것이지요.
경계 없는 오타쿠 문화의 확장과 연구 대상으로서의 위치가 궁금합니다
오타쿠 문화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플라스틱 모형이나 피규어의 제작, 기타 특정 영역(가령 아이돌,
철도나 자동차, 비행기, 역사, 군사 등) 관련 아이템의 수집 및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창작으로서의 장르혼합(2차 창
작)까지 경계가 없습니다. 2차대전 후 일본 대중문화가 미성년층을 넘어 점차 성인들의 관심과 취향을 포괄하는 작품
까지 생산해 소비층을 확장하고, 나아가 동아시아나 서구 지역까지 소비층과 팬덤을 확산해, 현재 글로벌한 오타쿠 문
화를 형성하고 있지요. 현재 우리가 BTS 등을 통해 K-Pop 팬덤의 글로벌 확산을 목격하고 있는데 이보다 앞서서 일본
의 오타쿠문화가 J-Pop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적 팬덤을 형성해왔습니다. 우리나라 성인들도 어릴적 TV에서 아톰이
나 마징가Z, 캔디 등의 일본 만화영화를 보았고, 드래곤볼, 슬램덩크, 세일러문, 원피스, 나루토 등을 보고 자란 세대
도 있지요. 그리고 이런 만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최근 닌텐도 스위치 게임인 <동물의 숲>이나 증강현실을 활용한 <
포켓몬 Go> 열풍에서도 볼 수 있듯, 일본의 오타쿠적 문화 산물은 더 이상 비주류 하위문화를 의미하는 서브컬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많은 일반 대중의 문화향유와 소비를 아우를 정도로 주류화 혹은 정상화(normalization)
된 측면도 존재합니다. 전면에서 탐구되고 논의되기에 충분한 주제와 현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타쿠 문화를 취향과 현상 뿐 아니라 학문적 분석 대상으로 접근하네요
이 수업에서는 문화적 창작과 생산에서 필요한 창의적, 기술적, 제도적인 요소와 어떤 역사 사회적 맥락이 작용하는지
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스트 학생들이 대중문화의 수동적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기술의 생산과 내용의 창작자
가 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사실, 문화와 과학기술 영역을 한 인간의 체험 영역에서 엄격히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로봇과학 발전 배후에 아톰과 마징가Z를 보고 자란 세대가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성장하는데 영향
을 미친 대중문화를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분석적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프레임에 매몰 되지 않기 위
해서 필요한 작업이죠. ‘오타쿠’는 특정 대상에 대한 팬층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지만, 애초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지
식과 소양, 심지어 수집과 창작능력을 겸비한 일종의 ‘달인’ 개념이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오덕’ 혹은 ‘덕후’로 변형되
어 쓰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비주류화된 서브컬처 영역과 관련된다는 측면에서 ‘유치한’ 혹은 ‘맹목’과 같은 부정적
인 뉘앙스와 연결 짓기도 합니다. 이해와 수용의 관점 차이가 극단적으로 상이한 인식과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긍정적인 차원의 이해에 기반하여, 대중문화의 오덕뿐만이 아니라 과학기술 여러분야의 오덕들이 우리사회
에 일상화되는 모습을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