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2018)와 최근 발표하신 「밀수: 리스트컨선」(2020)등 작가님의 대표작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첫 장편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는 사이버펑크장르의 수사물입니다. ‘사이버펑크’는 각종 기술은 발달한 반면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진 미래사회를 그리는 SF의 하위 장르인데요, 저는 여기에서 조금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시
도해 보고 싶었어요. 한편 가장 최근에 낸 장편인『밀수: 리스트 컨선』은 국제야생동물 밀수 시장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
이 쫓고 쫓기면서 사투를 벌이는 생태학 스릴러입니다. 이외에는 단편집 『증명된 사실』이 있는데, 이 단편집의 표제작
이 2018년도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받았지요. 다른 수록작도 전부 재밌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세계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특별히 어떤 일관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적어도 지금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
지금까지 안 다뤄본 것에 대해 쓰려고 하는 중이지요.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항상 글에 담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그건
독자들을 향한 일종의 위안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는 무한히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고, 그중 어떤 길을 걷고 있
든지 결코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조금 더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위안의 말
을 더 많이 건네고 싶단 생각을 종종 해요.
공과대학 출신의 소설가라는 매력적인 이력을 지니셨습니다. 지스트에 진학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는 없지만, 지스트는 인문학 교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학교의 방향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화학을 배우고싶었는데, 그와 동시에 창작을 진지하게 계속할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런 저에
게 고등학교 3학년때 지스트로 원서를 접수 했던 것은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지요.
창작활동에 대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흥미가 있었어요, 틈만 나면 연필을 잡고 노트에 낙서를 끼적거리던 학생이었거
든요. 구체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을 마음에 품게 된 것은 중학교 때 만난 친구가 글쓰기에 진지하게 열의를 갖는 모습
을 본 뒤부터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었어요.
촉망받는 공학도에서 SF 소설가로 전향하신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과학도로서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글은 계속 쓸 생각이었어요. 그러다가 학부 과정을 마칠 즈음에 작은 공모전에 당선
되었는데, 그것이 작가로서 처음으로 거둬 본 공식적인 성취였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더 또렷하게 미래가 보였던 것
같네요. 한동안은 글쓰기와 연구를 병행했지만,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글쓰기 장르 중 왜 SF소설을 선택하신 건가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소설을 쓰면 자연스레 SF가 나오는 법이지요. 제게 SF라는 장르는 선택이라기보다는 자연스
러운 귀결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SF를 쓰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을 때에도 제 글은 언제나 SF의 영역에 걸쳐 있었거
든요.
온라인 연재 플랫폼 브릿G에서 <아마존 몰리>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 이후 <증명된 사실>로 2018년 SF어워드 중·
단편소설부문 우수상을 받으시는 등 성공적인 작가 경력을 쌓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고민과 어려
움을 겪으신 때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민과 어려움은 항상 있지요! 최근의 제 일상은 “내가 어쩌자고 이 글을 쓰겠다고 해서 이 고생이지”의 연속입니다.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계속 이럴 거예요. 글쓰기와 연구는 가끔 이상하
게 닮은 데가 있습니다.
지스트 재학 시절 모습은 어떠하셨나요? 성실하게 학업에 전념하면서도 자신만의 꿈에 도달하게 해준 동기와 저력은
무엇이었나요?
엄청나게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한 번은 선형대수가 너무 어려워서 아예 손을 놓을 뻔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
만 좋아하는 과목에선 최선을 다했고, 그러면서도 머릿속 한쪽 구석에서는 “새로 배운 내용을 소설 소재로 쓸 수는 없
을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확실히 성실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 지스트
학부과정에 인문학 강의가 풍부하게 개설되어 있던 것은 저의 작가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전공과목과 더불
어 전문적인 문학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 배운 내용이 아직도 제 창작의 주요 기틀 중 하나입니다.
지스트 재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교우나 은사님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전공이었던 화학에서는 서지원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전공 수업에서 아주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
만 이따금씩 있는 에세이 과제는 특별히 공들여서 적어 내곤 했고, 그런 글을 서지원 교수님이 높이 평가해 주셨던 것
이 큰 용기가 되었어요. 한편 작가 활동에 대해서는 이시연 교수님께 정말 큰 빚을 졌는데, 영문학 교양 수업을 거의 매
학기 빼놓지 않고 들었던 경험이 지금의 제 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 이론부터 과학기
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리고 젠더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 SF 작가로서 창작을 계속하는 데
에 필수적인 내용을 잔뜩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지스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스트에서 수학하신 일이 작가님께 많은 도움이 되셨나요?
과학기술인이 되기 위해 과학기술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인생의 목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
느 대학 어느 학과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스트는 과학기술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도, 인문학에서 예술에 이르는 과학기술 바깥의 영역을 재학생들에게 가능한 폭넓게 경험시켜 주려 한다는 인상을 받
았습니다. 그런 면이 지스트의 큰 강점이고, 또 아직 작가가 아니었던 지스트 재학 시절의 저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되
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스트의 후배들을 위해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과학도가 성공적인 과학기술인이 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과학을 배웠다고 해서 꼭 전형적인 과학기술인의 삶
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길은 많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그 수많은 길 중 하나로 만들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더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자리가 주어졌으면 홍보를 해야겠죠. 한국 SF를 읽으세요! 한국 SF는 최근 몇 년 동안 큰 성과를 여럿 이루었고, 좋은
작품도 잔뜩 쌓여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작품이 선보여질 예정인 것은 물론이고요. 지금이 한국 SF에 입문할 가
장 좋은 시기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미리 엿볼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독자들을 향한 위안의 메시지 전하고싶어요. 세상에는 무한히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고,
그중 어떤 길을 걷고 있든지 결코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조금 더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말을 많이 건네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