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매 등 인류의 건강수명을 위협하는 질병들과 코로나19 사태 등 새롭게 발생하는 치명적인 감염병들의 병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제시하기 위해 인공지능, 항암, 항바이러스, 감염, 미세먼지, 면역치료 등을 키워드로 생명과학과 의과학·의공학의 유기적인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지스트 연구센터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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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달리 80년대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대였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가장 냉대받는 물리학과가 당시는 가장 촉망받는 학과였다는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기도 한 것이, 40년을 잠재웠던 ‘양자’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기 때문이다.
3천여 년 전 출애굽 유대민족의 시나이 반도 40년 방황은 자식 세대의 가나안 입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면, 어쩌면 지금 뚝 떨어진 ‘양자 시대’는 80년대의 시대적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는 해몽(?)을 해 본다. 하여튼, ‘양자’의 열매는 8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에 주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거의 모든 OB 물리학도가 동의하듯(?), 3학년 때 양자 역학 수강은 청운의 꿈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100년간 양자 역학은 아직도 해석 중에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그 당시 대학에서 1935년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된 EPR 논쟁이나 1960년 벨의 벨 부등식, 혹은 1987년 로체스터대학의 HOM 효과를 들어보기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사실 필자도 1990년대 늦깎이 미국 유학 중에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1996년 1월 포닥으로 MIT 가자마자 첫 세미나에서 만난 양자 컴퓨팅의 대가 S. Lloyd 교수의 강연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이제는 인터넷이 밥만큼 친숙하고 ChatGPT가 커피처럼 일상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바야흐로 정보통신의 풍요 속에서 노니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할 수도, 주어진 운을 탓할 수도, 선택당한 대학을 탓할 수도, 심지어 교수진을 아쉬워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은 아직 진행형이고, 양자 중첩은 무엇이고 양자 얽힘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에 이르러서는 더 혼란스러운 미궁에 빠져, 공부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별반 차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정리되지 않은 개념의 열매가 이미 ‘양자 컴퓨터’로 선보였으니, 준비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NP 문제 해결이라는 본래 역할을 수행하는 양자 컴퓨터가 개발되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 양자 통신이 무조건적 암호 기능을 담당하는 양자 네트워크로 발전하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양자 센서에 이르러서는, 고작 2개 큐비트의 이차 양자 얽힘이면 충분한 양자 컴퓨터나 양자 통신에 비해, 매우 높은 N개 큐비트 고차원 양자 얽힘을 필수로 하기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안도는 남의 기술을 베끼기에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추종(fast follower) 연구만 한 지난 굴종의 역사를 과감히 청산하고, 이제는 세계를 무대로 선도(first mover) 연구로 우리 것을 만들어 나갈 시간이기에 그렇다.
그리하여 또 다른 세대에게 바통이 이어질 때, 비로소 그때 이 세대는 ‘양자는 이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